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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만 나이 학력 키 고향 혈액형 등 개그맨 걸어온길

행복한플라비 2019. 7. 28. 23:40


개그맨 원로(?) 김용만은 제1회 KBS 대학개그제에선 대상을 받으며 웅장하게 데뷔했습니다. 

참고로 같이 대상을 탔던 사람은 양원경. 동기로 감자골 4인방인 김국진, 박수홍, 김수용과 유재석, 남희석 등이 있습니다.



그는 서울예술대학교 방영연예과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를 전공한 고학력자로

67년생 51세이며 172cm 82kg B형입니다.

고향은 서울 중랑구 묵동



[한바탕 웃음으로] 등 KBS 개그 프로그램에선 모습을 보였으나, 희극인실 선배들과의 마찰로 김국진, 김수용, 박수홍 등과 같이 자진 방출의 길을 택했습니다.[일명 감자골 4인방] 이후 김국진과 미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마치고 MBC로 복귀.


데뷔초에는 개그맨으로도 꽤 웃겼다. 그러나 데뷔하고 조금 지나고부터 피디들이 꽁트뿐만 아니라 진척하는 코너나 역할을 점차 시켰습니다. 또 감자골 사건으로 유학을 가게 되고 돌아와서 꽁트연기를 안 한지 오래 되어 특성상 바로 다시 하기 어려운 입장이 되었습니다. 이러자 개그맨으로서는 참석요청이 잘 안 왔습니다. 하지만 오는 프로그램은 일단 해야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조금 시간이 지나도 적응할 가능성이 높은 MC 쪽으로 점점 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선 테마게임 등에선 MC 자질이 드러나며 발탁됩니다. 특별히 MBC로 복귀 후 김국진과 같이 21세기위원회의 MC를 맡게 되었고, 이 프로그램이 당시 1997년 외환 위기 시대상과 절묘하게 맞물린 대박으로 인해 그가 다시 유명해지는 시초가 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에 브레인 서바이버 MC, 대단한 도전 MC 등에선 많은 관심을 얻으며 MBC 굴지의 예능 MC로 발돋움합니다. 당시 MBC 예능을 쥐락펴락했던 이경규에겐은 좌용만 우형기가 있었으며, 단독 MC로도 활발한 활동을 보였습니다. 당시 이휘재, 남희석보다 높은 등급의 MC였으며 신동엽과 유사한 등급이었습니다. 당시 유재석, 강호동은 MC로 명함도 못 내밀던 시절. MBC 방영연예대상을 몇 차례나 수상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한 해씩 걸러가며 이경규와 김용만이 대상을 나눠먹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타 방영국에선은 그다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특별히 KBS 와는 까다로운 사이가 지속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KBS의 퀴즈 프로그램인 1대 100의 초대 MC를 맡았으나 1년 만에 손범수로 교체되었습니다. 이후 요즘 들어 이슈 터뜨리는 데 맛들인 모 야구선수 출신 연예인을 대신하여 비타민의 진척을 정은아, 전현무와 같이 맡으면서 다소 나아졌던 듯... 그리고 2012년에는 얘기쇼 두드림의 메인 MC도 맡으면서 KBS에선도 고정으로 2개로 늘어났었습니다.



2009년 후반기에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하차[스튜디오 녹화 폐지]했던 것을 비롯해 참석하는 방영 수가 줄어들면서 입지가 좁아지는 중인 듯 했으나, 일밤에선 다시 한 코너를 맡았고, MBC 연예정보프로인 섹션TV 연예통신은 2013년 3월 17일까지 진척 중이었으니 많은 걱정은 없었을 듯. 하지만 이제는...


날방영의 대가라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스튜디오에선 화면 보면서 입으로 끝내는 프로그램을 주로 맡기는 했습니다. 연기에 도전한 논스톱5와 몸으로 뛰었던 SBS 작렬 정신통일은 흑역사라... 스스로 웃기려 들기보다는 몇몇 개성이 강한 사람들을[이경규, 박명수] 띄워주고 보완해주는 데 뛰어나며, 발음이 정확하고 순발력이 뛰어나 교양과 오락을 겸한 인포테인먼트 계열 예능 MC로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말 수여식에선 단골로 MC를 맡는 것도 이 때문. 파트너가 아무리 못해도 옆에선 김용만이 받쳐주면 그럭저럭 무사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김용만을 붙여줘도 답이 없는 경우도 종종 보이는데요, 이런 경우 그 사람은 MC로서는 완전히 답이 없습니다.라고 보면 됩니다.에



사실 자신이 웃기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남을 띄워주고 보완하는 데 더 능숙할 뿐. 일밤에선 방영했던 코너 [건강보감]에선은 '같이 출현하는 다른 모든 MC들과 게다가 게스트들에겐까지 갈굼당하는 안습남' 기믹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웃음의 50% 이상을 책임지기도 했습니다. 나름대로 한 시대를 지배했던 MC답게 능력은 출중하다 할 수 있으며, 진척 능력으로만 따지면 손꼽히는 인물입니다. 이런 진척능력을 가장 잘 발휘한 게 브레인 서바이버. 지금 관점에선 보면 사실상 세바퀴를 혼자서 진척한 셈입니다. 이 중구난방 개판난전이 되기 십상이었던 코너를 잘 끌고 간 건 김용만 진척빨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선우용녀, 양희은, 이경실 등 세바퀴 고정게스트들이 기가 셌다고 하지만 브레인 서바이버는 당시에 고정으로 노사연, 조형기, 김흥국에 덤벼. 저들이 한번 난리나면 ㄷㄷㄷㄷ 선우용녀나 양희은과 유사한 세대의 대선배 연예인들도 흔히 한두 명씩 게스트로 나오는 등 더 강했습니다. 거기다가 당시 김용만은 30대 중후반으로 40대인 세바퀴 진척자들의 나이보다 더 어렸네요. 그럼에도 혼자 40~50대 선배 연예인들, 20대 어린 연예인들 가리지 않고 잘 소통하며 진척했습니다. 진척능력이 역대급이란 말은 과장이 아니라 진짜다. 하지만 지나치게 무난한 이미지와 주로 MBC에선만 활동하는 점은 장벽이 됐을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2000년대 초중반부터 무한도전, X맨을 찾아라 등에선 시작된 1인자가 진척도 하면서 자신도 구르고 뛰어야 하는 버라이어티가 200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음에 따라 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면도 있습니다.  2008년 당시의 한 블로거의 관심


부업활동이 활발하며 외식비즈니스로 '닐니리 맘보'라는 국수집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자신 말로는 시원하게 말아 먹었습니다고 하는데 그럭저럭 잘 되는 것 같기도... 국수 체인점 치고는 국수 인심이 좀 후한 편이라, '많이 드시길 원하시는 분은 미리 말씀해주세요.'라고 가게에 써 붙여져 있습니다. 같이 나오는 김치[비빔국수에 들어간다]는 좀 달짝지근한 편. 그 외에 여행사도 하였는데 막 기를 펼 시점에 신종플루 크리... 등 손대는 일이 많았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한 듯.



절친인 김국진과는 MBC 이적 이후 서로 간의 리즈시절과 슬럼프 기간이 정확하게 교차하는 묘한 관계가 있습니다. 과거 테마게임 때인 김국진의 전성기 시절 김용만은 그 그늘에 가려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더구나 김용만이 목발을 해야 할 정도로 많은 부상이 있어서 방영을 쉬기도 하였고 연예계를 떠날 생각도 했을 정도다. 반면 김국진이 여러 가지 문제로 방영을 접었을 때인 2000년대 초반에 김용만은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후 2000년대 후반 김국진이 방영을 복귀하면서 재기에 성공할 때 김용만은 부진하는 느낌입니다. 



김용만과 김국진이 서로 동고동락한 관계로 시작한 절친으로 서로 물심양면 도와주는 관계로 이끌어주다 보니 공교롭게 묘한 교차점이 보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김용만이 어려웠던 1990년대 중후반 시절에는 김국진이 김용만에겐 당시 3000만 원이라는 많은 돈을 빌려주는 것도 아니고 아예 그냥 주면서 은퇴를 강력하게 만류한 덕분에 김용만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어서게 되었습니다고 하며, 김국진의 2007년 복귀 당시에도 사실 MBC 예능국에선 영향력이 컸던 김용만이 상당히 힘을 써준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과거 잘나갔던 개그맨일지라도 오랜 휴식 뒤 무릎팍도사 참석과 동시에 서브코너 라디오스타에 중간투입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메인으로 앉혀 복귀시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



2012년에 들어선 새로 맡은 프로그램만도 4개였습니다. KBS의 얘기쇼 두드림, SBS의 세대공감 1억 퀴즈쇼, JTBC의 닥터의 승부, MBC의 승부의 신. 기존의 섹션TV 연예통신, 비타민, 스타부부쇼 자기야와 또한 2012년에 담당하고 있는 공중파 메인 MC만도 각 국에선 2개씩 6개. 이 분의 저력을 알 수 있는 수치라고 하겠다. 특별히 1억 퀴즈쇼의 경우에는 생방영에도 불구하고 방영 경험을 바탕으로 정말 안정적인 진척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2012년 말에 들어서 새로 맡은 프로그램 4개 중 2개가 종영되었습니다.